전초고교급: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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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가 좋지 않음, 혹은 그런 운수. 루리리의 재능은 불행입니다. 사람이 운이 안 좋아봐야 얼마나 안 좋겠어 싶겠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넘어지는 것은 물론, 책장 위에 꽂혀 있던 책이 갑자기 떨어져 머리에 맞거나 종이를 넘기다가도 베이는 건 일쑤, 인도를 걷다가도 인도로 들어온 차에 치여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멀쩡히 잘 돌아가던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고장 나 몇 시간을 그대로 갇혀있는 등... 차마 다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불행들이 그의 뒤를 쫓아다닙니다. 길을 가다가 아이가 찬 공에 머리를 맞는 가벼운 것부터, 교통사고며 공사장의 철근이 떨어져 다치는 것까지 심한 일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은 일어난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이런 일이 반복되니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는 것은 물론이지요. 루리리의 입에서는 집에서 보낸 시간보다 병원에서 보낸 시간이 더 길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곤 합니다.
그렇다면 이 걸어 다니는 재앙과도 같은 사람을, 신 키보가미네와 미래 기관에서는 어째서 그의 불행을 재능으로 인정해주었을까요? 저런 불행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일어나면 건강하던 사람도 절망에 물들기 십상인데 루리리는 지옥 같은 나날들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희망을 좇았기 때문입니다. 희망에 대한 열정은 신 키보가미네가 시도한 희망들을 양성하겠다는 계획에도 적합했음은 물론, 다른 학생들과 일반 대중들에게도 본보기로 써먹기 딱 알맞았습니다. 루리리가 얻은 초고교급이라는 타이틀은 사람들에게 있어 '그래도 나는 저 정도까지는 불행하지 않으니까....'라는 일종의 위안으로 쓰였습니다. 자신보다 불행한 타인을 보며 위안을 얻는다는 것이 나쁜 생각이라는 것을 누가 모르겠어요? 하지만 사람이라는 게 자기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위안을 얻는 존재 아니겠어요. 잘못된 생각이든 뭐든 사람들이 루리리를 보며 위안과 희망을 얻는다면 결과는 좋으니 된 거겠죠.
루리리 또한 자신이 갖게 된 호칭에 따른 사람들의 시선을 모르고 있는 건 아니랍니다. 오히려 당사자임에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지요. 다만 전 초고교급들에게 주어지는 명예와 각종 지원들, 그것이 뒤쫓아오는 불행들 때문에 일상생활도 버거운 루리리에게는 꼭 필요한 것들이었기에 굳이 열을 내지 않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자신을 보며 불쾌한 위안을 얻든 말든 루리리에게는 불행이라는 재능을 인정받아서 오는 특혜가 무엇보다 중요했으니까요.
그리고 전 초고교급이라는 이유만으로 주던 특혜들을 모두 없애고 재능 평가를 치러 자격을 인정받아야만 특혜를 얻을 수 있는 지금, 루리리에게는 재능 평가에 필사적일 수밖에 없답니다.
부드럽게 아래로 떨어지는 새하얀 머리카락을 갖고 있습니다. 처진 눈매 덕분에 무척 순해 보이는 인상이지만 눈동자는 붉은색으로, 인상과는 상반됩니다. 머리에 노란색 리본을 루리리 기준 왼쪽에 매고 있습니다. 목에는 그의 머리카락처럼 새하얀 붕대가 매여있습니다. 소매가 길어 잘은 보이지 않지만 손에도 손가락을 제외하여 팔꿈치까지 붕대가 감겨있습니다. 흰색에 노란색으로 포인트 컬러, 카라에 옥색 나비 모양 장식이 달려있는 동양풍 상의를 입고 있습니다. 그 아래로 허리부터 시작하는 검은색 바지와 검은색이 주 컬러인 구두를 신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