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한 모든 기억을 말이죠.
Hanabira Hanabi/花美羅 花日
나이: 22
키&몸무게: 187cm/77kg
생일&혈액형: 6월 1일/Rh-AB
스탯
힘 ✦✦✧✧✧
지능 ✦✦✦✦✧
관찰력 ✦✦✦✦✦
정신력 ✦✦✧✧✧
운 ✦✦✧✧✧
✦✦✦✦✦
소지품
수험표
L·L의 문양이 그려진 빈 종이카드
L·L의 지팡이
흰 레이스 손수건
꽃다발
범행 계획이 정리된 수첩
✦성격✦
Ⅰ 결여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것이 하나비에게는 없다. 그것은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과, 신념.
자유의지가 없는 인간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나부끼기 마련이다. 하나비 역시 그랬다. 삶의 목적이나 의미 따위는 하나비에게는 너무 먼 이야기였다.
무언가 중요한 것이 결여된 채로 살아가는 인간… 심리적으로 불안정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나 끈기와 강단과 제 의견이랄 게 없었기에 하나비는 늘 누군가에게 휘둘렸다.
마음의 여유가 부족하기에 금방 피해의식을 갖고 만다. 조금만 선을 그어도 배신 혹은 이용이라고 치부한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될때마다 그의 자아존중감은 뚝뚝 꺾였다.
Ⅱ 비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러브 루팡과 달리 하나비는 무언가에게 애정을 가져본 일이 없었다. 하나비의 세상은 좌절감으로 가득하기에, 스스로를 배려하는 덴 극히 서툴며, 더욱이 남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건 불가능하다.
매사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애정의 표현과 긍정의 표현 역시 확연히 적다.
좋은 일이 있을 때에는 잠시나마 우울감을 잊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잠깐의 행복은 불안이 되어 물밀듯 덮쳐온다고. 자신도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상황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싶지만, 특유의 성격은 마치 버릇 같은 것이라 쉽게 고칠 수가 없어 보인다.
Ⅲ 공감
특유의 우울만큼이나 뛰어난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공감능력.
남에게 이입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비에겐 가장 쉬운 일이었다. 그 과도한 공감력을 자기 혐오에 쓰고 있다는 것이 흠이지만.
Ⅳ 질투
자신과 남을 자주 비교한다. 좋지 않은 쪽으로.
타인의 장점을 캐치해내는 건 잘하지만 통 자신의 재능이나 능력만큼은 마주 보려 하지 않는다.
러브 루팡으로 활동하다 괴도의 재능을 얻게 된 것도 나름의 상처인듯. 심지어는 자신이 연기하는 러브 루팡과 하나비 자신을 견주며 자기 혐오를 하기도 한다.
본인 말로는 옆에 누군가가 있기만 해도 의식하게 된다고.
Ⅴ 충동
객관적으로 형태를 살피는 능력, 그것은 하나비에게는 없고 러브 루팡에게만 있다. 즉, 두번 세번 생각해보면 곧바로 안정을 찾을 수 있음에도 마음이 앞서 일을 저지르고 만다.
스스로 통제하는 것이 어려운듯 하다. 일단 저지르고 보자, 라는 의도는 조금도 없지만 잘 참지 못한다.
다만 누군가 보는 시선이 있다면 당장은 억누를 수 있다. 러브 루팡으로서 살아가게 된 것도, 만일 그 자리에 중재해줄만한 사람이 있었다면 없었을 미래.
✦텍스트 관계✦
✦과거사✦
*요약 선천적인 우울과 과잉공감능력. 하나비와 친했던 사촌동생이 하나비를 배려하겠다고 제 꿈을 포기하고 작가로 전향하나, 하나비는 오히려 사촌동생한테 기만당했다고 느낌.
동생의 작품에 나오는 등장인물을 흉내내고 다님. 동생의 작품·인물을 뺏을 수도 있고, 목표의식을 가짐으로써 안정감을 느끼고 우울감을 치유할 수도 있기 때문. 하나비 입장에선 일석이조.
하지만 특유의 공감력으로, 자신이 연기하는 러브 루팡에게 과하게 심취해버리고, 되려 자기 자신은 없어져도 괜찮다는 듯이 사고하기 시작했다. 때문에 '하나비'로서 쌓아올린 많은 것을 잊어버려 건망증 증세를 보인다.
날 때부터 하나비에겐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했다. 제법 풍족한 집에서 태어나 약간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음에도 하나비의 마음을 채워줄 만한 것은 없었다. 그것은 선천적인 우울이었다.
그토록 하나비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게 된 까닭은, 하나비의 사촌 동생이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같은 해에 태어나 생일만이 조금 다른 하나비의 사촌은 모든 면에서 하나비를 금방 앞지르는 천재였다.
누구도 하나비와 동생을 비교하지 않았지만, 그의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하나비는 자신을 잃었다. 표정, 마음가짐, 말투, 행동. 하나같이 맑고 당당했으며 한 점의 흐림도 없는 동생이었다.
하나비의 동생은 하나비를 사랑했다. 하나비와 함께 있으면 차분해져서 예쁜 광경이 눈에 들어올 수 있다며 함께하는 것을 좋아했다.
뭐든지 하나비를 따라했고, 따라다녔고, 나누려고 했다. 단순한 치장뿐만이 아니라 신체적인 것, 말투까지. 동생은 이걸 '비슷한 걸 공유하는 것'이라 여기며 놀이처럼 좋아했다. 그리곤 하나비에게도 자신을 따라하며 놀아 달라고 부탁했다.
철없던 시절의 가벼운 말 한마디였지만 남들에 비해 마음의 여유가 적었던 하나비는 그것을 가볍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동생의 기세에 눌려 이것저것 따라하고, 비슷하게 흉내내보긴 했으나 혼자가 되면 자괴감이 몰려오기까지 했다.
자신같이 무언가 결여된 사람이 완벽하고 아름다운 사람을 흉내내도 되는가, 그걸 담아낼 그릇은 되는가 하며 홀로 머리를 싸매었다. 동시에, 단순한 장난이란 걸 알면서 끝없이 고민하는 스스로가 미웠다.
하나비의 부모님은 어째서 이렇게 비관적인 아이가 만들어졌는지 의문을 가졌다.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하나비는 몇 번이고 정신과 상담을 받아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애매하기만 했다.
조금 특별한 아이니까 주의를 요한다, 는 전문의들의 말이 하나비에겐 새장처럼 느껴졌다. 자신이 남과 다르게 태어나 괜히 폐를 끼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왜 동생과는 다른지 하나비는 늘 혼자서 앓았으며, 상담을 반복할 때마다 특유의 절망적인 성격은 점점 나락으로 치닫았다.
몇 번째인지도 모를 정신과 상담을 갔을 때, 하나비의 상담을 담당했던 정신과 의사는 '목표의식이 있으면 괜찮을 것이다'라며 약간의 대안을 내놓았다.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이고,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자각하게 된다면 끝없는 자기혐오도 어느정도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즉, '꿈'을 가져보라는 말. 하나비의 부모님은 상냥하게도 몇 날 며칠 사랑하는 딸과 함께 장래희망을 고민해주었다. 하나비는 마음만 다잡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아이라며 격려해주었다. 하나비 역시 '되고 싶은 자신'을 구체화해가며 안정감을 느꼈다.
그렇게 정한 하나비의 '꿈'은 심리학자였다. 당연한 결과였다.
우울감과 좌절감에 빠져 있던 하나비는 구원받았고, 스스로도 조금은 밝아졌음을 의식하였으며 미래 계획을 세우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었다. 그런 하나비의 눈에 정신과 의사나 심리학자는 구원자마냥 보였다.
반쯤은 타의로 결정한 장래희망이었으나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결국엔 하나비도 꿈을 반드시 이루고 싶단 소망이 있었으니까.
하나비가 후회하는 많은 것들 중 하나는, 자신의 소망을 하나비의 사촌에게 털어놓았다는 것…. 하나비와 자신과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놀이'를 특히 좋아했던 사촌동생은, 하나비의 속사정을 듣고 그 자리에서 곧장 내뱉었다.
하나비가 심리학자가 된다면, 나도 할래. 우리 대학도 같이 가고, 평생 함께하자. 하나비도 그게 좋지?
악의는 없었지만 일순간 하나비는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감각을 느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동생이 모든 면에서 하나비보다 빼어난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하나비는 누구보다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마 동생도 어느 정도는 자신의 우월함을 인식하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하나비는 두 사람이 만나 '놀이'를 시작한 시점부터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겉모습, 말투, 목소리, 그리고 유일한 꿈까지. 이대로라면 자신은 모든 걸 빼앗겨버린다고 착각하고 말았다.
스스로의 나약함에 몇 년을 괴로워했던 하나비에게 심리학자라는 꿈은 어찌 보면 희망의 끈이었다. 진로와 분야가 다르니, 사촌동생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는 그 습관까지도 일부 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앞으로의 미래까지 같아진다면, 아마…. 평생을 제자리걸음만을 할 뿐일거야. 내 발목을 잡는 건 나 자신으로 충분해….
그 순간 그런 결단을 내리고, 하나비는 자신이 동생에게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당혹감과 절망이 묻어나는 최저의 표정, 그것이 하나비가 동생에게 보여준 표정이었다. 자기주장이 약해서인지 유순한 성격 탓인지는 몰라도, 함께 있을 때면 웃는 얼굴만을 보이던 하나비가 속내를 드러낸 건 제법 충격이었다.
당황해서 하나비는 별 말을 하지 않았으나 표정만으로도 하나비의 말이 얼핏 전달되는 듯 했다. 말괄량이같던 그 사촌동생에게 곧바로 사과를 받아냈으니까.
당연하게도 두 사람의 사이는 멀어졌다.
악의가 없는 걸 알면서도 순간적으로 동생을 당황스럽게 만든 자신이 싫어졌다. 한편으로는 정말 악의가 없던 게 맞나, 하는 의심이 싹텄다.
그 순간까지도 하나비는 동생을 사랑하고 같은 마음으로 아끼고 있었지만 서운하고 미운 감정이 함께 돋아났다. 스스로도 동생에 대한 입장을 정하지 못해 괴로웠다.
결국 마음의 약함은 죽 떠안은 채로, 하나비는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하고 성적을 올렸다. 자기혐오와 싫증의 반복으로 하나비의 우울은 극에 치달아 기억력조차도 희미해져가고 있었기 때문에 썩 유쾌한 시간만은 아니었다.
사람은 혼자가 되면 부정적인 감각을 선명히 느낀다. 하나비는 홀로 몇 년이라는 세월을 보내면서 동생에 대한 기억을 나쁘게 바꿔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다 나쁜 마음을 품고 행동했던 거야, 그게 아니면 말이 안 돼…. 자신을 향한 비난을 반 정도 나눠 동생에게 돌리면서 합리화했다. 나는 잘못한 게 없다는 식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비는 여전히 자신보다 자신의 사촌동생을 훨씬 사랑했다. 그럴 일이 언제나 올까 싶었지만 만약 다시 재회하게 된다면, 진실된 대화를 나누며 용서하고 이전처럼의 관계를 회복할 생각이었다.
남을 미워하는 것보다 괴로운 건 없으니까. 그리 생각하면서 하나비는 서로 대면할 날만을 기다렸다. 그 어느 때보다 엉망진창인 정신상태로.
역시 단순한 인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던 것인지 하나비의 동생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하나비가 한창 공부에 전념할 때였다. 오랜만에 둘만 있고싶다며, 얘기할 것이 있으니 만나자는 내용의 메일이었다.
때가 왔음을 직감한 하나비는, 깊은 긴장과 함께 진솔히 속마음을 털어놓을 것을 다짐하며 약속된 장소로 향했다. 그동안 사촌동생도 마음고생이 심했을테니까, 오늘 반드시 화해하고 서로 행복하게 지내자는 생각에 되려 기쁘기까지 했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과 달리, 사촌동생은 아주 어릴적의 그 미소를 간직한 채였다.
여전히 한없이 밝았으며, 꿈을 양보하고도 아무런 미련이 없는 건지 즐거워보이기만 했다.
마치…. 미안한 감정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것처럼.
하나비는 적잖이 당황했으나 지금 사과를 받아내고 화해해야만 한다는 강렬한 직감을 느꼈다.
사촌동생은 그런 하나비의 표정은 조금도 읽지 못하고 이야기를 계속해나갔다. 자신이 요새 연재하는 책이 있는데, 인기를 좀 타서 돈 깨나 벌고있다는 시시콜콜한 자랑 같은 것. 그 작품에 어떤 인물이 나오며 이런 설정을 붙여주기까지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는지 따위의 화제를 이어갔다.
독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등장인물이며, 자신이 아끼는 등장인물이나 세계관의 배경설정, 담당자는 어떤 사람이고 성격이 얼마나 나쁜지…. 끝날 기색이 보이지 않았지만 하나비는 참을성있게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동생의 작품이 흥미로운 건 사실이었지만 하나비의 목적은 그게 아니었고.
밤은 순식간에 찾아왔고, 막차 시간을 놓쳤다며 동생은 그새 잔뜩 취한 채로 하나비의 손을 잡고 하나비가 사는 오피스텔로 향했다. 하나비의 집에 들어오고나서도 동생은 시끌벅적하게 제 얘기만을 했다.
이대로는 안 돼… 오늘이 아니면 안 돼. 조급해진 하나비는 덥석, 동생의 손을 감싸 붙잡고는 말허리를 뚝 잘랐다.
동생의 긴 얘기를 들으며, 편하게도 지냈다는 배신감이 무럭무럭 차올랐지만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옛날 그 일, 자신은 네 행동에 어떤 상처를 받았고 그 때 어떤 생각을 했으며, 이런 말을 꺼내는 의도가 무엇인지 등등을 길게 늘어놓았다.
스스로를 혐오해 마지않는 하나비에게는 괴로운 시간이었다. 과거 일을 끌어올수록 후회만이 깊어졌지만 하나비는 최대의 용기를 내어 과거와 마주했다.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 그렇기에 그는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슬퍼하지 않았다.
…
아… 미안. 그 일 말인데… 웬만하면 안 꺼내는게 좋지 않을까…?
서로한테 별로 좋지도 않은 기억이니까… 모처럼 만났는데 분위기 가라앉히긴 싫거든.
…동생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아주 뜻밖이었다.
감각이 느리게 반응하는 것을 느꼈다. 곧바로 받아들이지 못했고, 방금 들은 말이 도통 머릿속으로 전달되지 않았다.
스스로를 미워하고 과거로부터 도망치는 하나비에게는 그 행동 자체야말로 커다란 용기였다. 그리고 동생을 향한 마지막 신뢰이기도 했다.
우울감과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있던 하나비는 상황을 냉철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정말로 앓아오던 것은 나뿐이었구나. 몇 년을 괴로워해, 많은 것을 고민했는데 전부 부질없었구나. …그런 현실을 직시하게 되자 도무지 이성을 붙잡기는 힘들었다.
남이 생각하는 나는 도대체 무엇인지, 과연 그 행동에 악의가 있었던건지, 그 답을 찾기 위해 자신의 행동과 언사 하나하나를 되짚어가며 나락으로 떨어져야했던 나는 누가 보상해주는가.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런 식으로 회피한대서 뭐가 달라진다는 거야. 잊어선 안 될 것이 있는 거잖아… 그 정도로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어?
…극도의 우울감으로 하나비는 정신을 가다듬을 새도 없었다. 절망스런 감각도 기분도 상황도, 하나비의 머릿속이 단 한가지 생각으로 가득 차버리기엔 충분했다.
그 짧은 시간동안 하나비는 머리를 빠르게 굴려 하나의 계획을 짰다. 첫 꿈을 빼앗겨버렸으니 그대로 갚아주자는 계획이었다.
아침이 밝아 동생이 돌아가고 난 뒤 하나비는 계획해둔 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대충 양복과 모자를 구하고, 수선할 부분은 수선했다. 눈에 들어오는 아무 꽃이나 사들였고 흔해빠진 소품을 사다가 약간 손봐 고치는 정도였다.
얄팍한 설정을 짜 붙여 자연스럽게 만드는 건 쉬웠다. 이미 동생에게 들어 많은 걸 알게 되었으니까.
하나비의 계획이란 바로 '러브 루팡을 빼앗는 것'. 꿈을 포기하고서도 그토록 행복할 수 있던 원동력이 동생의 창작품에 있다고 생각한 하나비는 동생에게서 최대의 행복을 뺏어가고자 했다.
참으로 애매하고 알기 쉬운 질투심이었다. 홀로 쌓아온 울분을 터트리지 못한 앙금이 애꿎은 곳을 향했다.
하나비가 어설프게 인물을 훔치려고 한 것은 또한, 어릴적 한 번 좌절됐던 목표의식을 다시금 되살리기 위함이기도 했다.
동생의 창작품을 훔치겠다는 목표, 그리고 러브 루팡으로서 활동한다는 목표….
목적이 있을 때의 자신이 가장 안정감을 느낀다는 걸 알고 있었던 하나비는, 지칠대로 지친 제 정신을 조금이나마 예전으로 돌려놓고 싶었다.
러브 루팡은 하나비가 처음으로 훔친 것이었으며, 첫 도둑질을 시작으로 러브 루팡으로서의 삶이 막을 올리게 된다.
비록 훔친 겉모습이었지만 하나비는 그 순간까지도 남을 돕는 것에 러브 루팡을 쓰자고 마음먹었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세운 설정대로라면 러브 루팡의 범행에는 타겟이 있어야 했기 때문에, 하나비는 한 대부호를 점찍고 스케줄을 캐내기 시작했다.
나이와 신분을 속이고, 한 심리학자로 위장해서 접근했다. 자신이 아닌 사람으로 변장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며 되려 즐겁기까지 했다. 자신을 남에게 드러내지 않는 건 간단하고도 행복한 것이었음을 이때서야 하나비는 배운 것이다.
마침내 대부호는 마음을 열고 하나비에게 제 재산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하나비에게 구경시켜주었던 유명 그림작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 달이라는 여유를 둔 것은, 재산을 훔치기 위한 충분한 작전을 짜고, 대부호의 의심의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장치였다.
물론 의심을 완벽하게 피할 수는 없었지만.
다만 훔친 그림을 어떻게 처분할지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기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보관하고 있는듯.
그 뒤로는 좀 더 훔치기 쉽고 나누어주기 쉬운, 재물이나 작은 보석 등을 위주로 훔쳐 왔다.
그 대부호의 폭로와 몇 번의 추가 범행으로 러브 루팡은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처음 훔쳤던 그 그림만큼이나.
범죄를 저지르기는 하지만 일단 평범한 사람들을 돕는단 것엔 틀림이 없으므로,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꽤 많은 사람들을 제 편으로 돌리기도 했다. 이렇게나 공정하고 정의로운 러브 루팡을, 어떻게든 잡으려고 하는 피해자들이나 경찰이 잘못됐다는 여론마저 형성됐다.
하나비는 깨달았다. 자신의 러브 루팡에게는 무엇이든 훔치는 힘이 있다는 것을. 단지 가시적인 것만이 아닌, 사람의 마음 혹은 사람 그 자체까지도 훔쳐갈 수 있다는 것을….
자신의 창작 인물이었음에도 하나비는 러브 루팡에게 깊은 애정과 호감을 가졌다. 폭력적이지도 가학적이지도 않은 방법을 쓰면서도 평화를 이어갈 수 있다니, 이런 사람이야말로 정말 가치 있는 사람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버렸다.
러브 루팡이 범행을 저지르고도 들키지 않았던 건 하나비의 꼼꼼한 사전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을 치기 한참 전부터 노렸던 인물에게 자연스레 다가가 마음의 문을 열어내고, 그 틈에 훔치는 수법.
타깃이 해외에 있다면 짧게는 한 달, 길게는 1년도 전에 미리 그 나라로 향하는 티켓을 끊어 정착하며 기회를 노렸다. 계획이 틀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수십 가지의 대책을 세워놓고 언제나 꼼꼼하게 뒷정리를 했다. 하나비에게 치밀하게 계획하고 경계하는 것은 쉬웠다. 마음이 흔들리지만 않으면 뭐든 가능한 아이였으니까.
하지만 하나비는 자신의 공로를 조금도 인정하지 않았다. 범행을 저지르기 전에 충분한 사전조사와 계획을 짜는 것이 너무 당연한 일이 되어버려서였을까, 혹은 자신을 의식하는 것에 무딘 것이었을까….
하나비는 이입과 공감력이 상당히 높았다. 그것이 하나비의 끝없는 자책에 관여했을 정도로.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거나 그 사람 자체에 이입해본 경험은 수없이 많았다. 즉, 하나비는 자신이 잠깐 연기했던 인격에게도 심하게 빠져들었다. 하나하나 살아있고 입체적인 또 다른 인물이라고 보았고, 그 자리에 하나비가 낄 곳은 없었다.
물건을 훔치기 전 접근하여 정보와 인정을 캐내는 것도 결국 신분을 숨기고 하는 짓이므로 자신의 업적이 아니고, 최종적으로 러브 루팡이 괴도로서 활약하는 것도 더더욱 자신의 업적이라곤 할 수 없었다.
겉모습과 목소리와 성격과 행동을 숨기지 않은, '하나비' 그 자신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나비에게 대단한 건 자신이 아니었다. 러브 루팡으로서 활동할 때 겪는 경험, 추억, 기억과 지식 모든 것은 러브 루팡의 것이었다.
러브 루팡으로 살아가는 시간이 길어지면 하나비의 자아의탁 역시 한없이 깊어졌다. 그러한 자아의탁이 심해지면 또, 러브 루팡으로 변신하여 싫은 자신을 회피해버리는 시간이 늘었다.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악순환속에서 하나비는 자신감을 잃어갔다. 비단, 자신감만을 잃은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누구였는지도 하나 둘 잊기 시작했다.
하나비라 하나비가 쌓아올린 소소한 공이나 추억등은 러브 루팡에게 묻혀 지워져갔다. 러브 루팡으로 활동하는 데 방해가 되는 잡념은 깨끗이 사라졌다.
…그러나 하나비는 바라고 있었다. 자신이 잊혀지고 그 위를 러브 루팡이란 존재가 덮어버리기를.
자신이 과하게 러브 루팡에게 몰입하고 있다는 것도, 자신의 사고방식이 틀렸다는 것도,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기만 한다는는 것도 하나비는 자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고질적인 난치병마냥 고치기가 힘들었다. 고치려는 노력조차 회피해버리고 하나비는 스스로를 외면했다.
✦기타✦
1인칭은 나(私). 사람을 부를 땐 성씨만을, 지칭하지 않고 뭉뚱그려 부를 땐 당신(貴方).
하나비로서의 원래 말투는 차분하고 정적인 평어체였으나, 러브 루팡의 탈을 뒤집어쓰면서 특이한 말투가 옮았는지 종종 혼란스러워한다. 이를테면 가볍고 미묘한 존댓말.
상당한 우등생이었다. 학생이 200명 쯤 있다면 석차는 10위 안.
정신이 조금만 더 안정되어 있었더라면 정말로 심리학자나 의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러브 루팡과는 다른 의미로 좋고 싫음이 없다.
L·L은 싫어하는 게 없고, 하나비는 좋아하는 게 없는 쪽으로.
굳이 고르자면 꽃이나 리본, 일부 색. 러브 루팡이라는 인물을 창작할 때 사용한 요소는 전부, 하나비가 약간이라도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들.
추리 소설은 좋아하나 로맨스는 싫어한다.
하나비의 모습일 때 스스로의 얼굴을 보게 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보다도 L·L일 때의 하나비에게 훨씬 애정과 동경을 품고 있다. 하나비에게 러브 루팡은 '되고 싶었던 자신'이라는 개념이 무의식적으로 구체화된것이나 다름없다.
손재주가 상당히 좋으며, 암기를 잘 한다. 사람의 신체 부위나 장기, 세포 등에 박학하다.
자주 여행을 다니기 때문에 다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 모국어인 일본어는 기본이고, 영어, 불어, 스페인어, 중국어 등도 수준급.
건망증 증세가 심하다. 주로 자신에 대한 걸 자주 잊어버린다. 반대로, 러브 루팡에 관한 것은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다.
사촌동생에게는 애정과 증오를 한꺼번에 느끼고 있다.
동생의 창작물과 등장인물을 훔친 점에서는 분명한 미움이 드러난다.
하지만 반대로, 그 이상의 괴롭힘은 없는데다 동생의 인물을 훔치고도 비교적 얌전하게 괴도 생활을 유지한 걸 보면 아끼는 마음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닌 듯. 스스로도 이 관계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사촌동생을 정말 미워하지만 한편으로는 미련이 있음을 인정한다.